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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 영화 해석

어벤져스 연합과 희생, 그리고 믿음의 시작

by 박회장-* 2025. 10. 15.

 

영화 어벤져스1 포스터 사진

 

 

2012년, 마블 스튜디오의 〈어벤져스〉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질서를 뒤집은 사건이었다. 그전까지 각자의 세계에서 활약하던 영웅들이 한 화면에 모여 ‘팀’으로 싸운다. 이 작품은 단순한 히어로 액션의 합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왜, 어떻게 하나가 되는지에 대한 서사다. 나아가 연합이 무엇을 가능케 하고, 희생이 영웅을 어떻게 완성하며, 믿음이 어떤 연대를 낳는지 차근히 증명한다.

영화는 평화유지기구 쉴드(S.H.I.E.L.D.)가 우주적 에너지체인 테서랙트를 연구하던 중, 로키가 포털을 열고 그 힘을 빼앗으면서 시작된다. 로키는 선언한다. “인간은 자유를 원하지 않아. 통제를 원하지.” 이 대사는 곧 영화의 토대를 세운다. 자유 vs. 통제, 개인 vs. 공동체— 이 갈등의 축 위에서 어벤져스는 탄생한다.

 

연합으로 세운 첫 번째 전설

닉 퓨리 국장은 각기 다른 배경의 영웅들을 부른다. 아이언맨(토니 스타크), 캡틴 아메리카(스티브 로저스), 토르, 헐크(브루스 배너), 블랙 위도우(나타샤 로마노프), 호크아이(클린트 바튼). 그들은 능력만큼이나 성격도 극단적으로 다르다. 독선적인 천재, 원칙주의 군인, 신의 자존심, 분노의 괴력, 그림자 요원, 무형의 저격수— 이들의 첫 만남이 삐걱대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초반 팀워크는 엉망에 가깝다. 아이언맨은 “권위”보다 “효율”을, 캡틴은 “결과”보다 “가치”를 우선한다. 헐크는 감정 통제의 불안으로, 토르는 형제 로키와의 가족 서사로 휘둘린다. 그러나 이 충돌은 해체의 징조가 아니라 연합으로 가는 통과의례다. 서로의 다름을 통째로 마주하지 않고서는, ‘우리’라는 이름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정적 전환점은 콜슨 요원의 죽음이다. 그의 희생은 어벤져스를 ‘복수자들’로 이름 붙이며, 분열을 하나의 방향으로 접합한다. 닉 퓨리는 말한다. “그들은 아직 하나가 아니지만, 누군가가 세상을 구해야 할 때는 모일 것이다.” 그리고 뉴욕 하늘— 치타우리 군대가 포털을 통해 쏟아지는 순간, 그 예언은 현실이 된다. 원형 쇼트 속 여섯 명의 영웅이 어깨를 맞대는 장면은 영화사적 ‘팀의 탄생’ 아이콘으로 남았다.

이 대목에서 〈어벤져스〉는 첫 전설을 완성한다. “서로 다른 영웅들이 하나로 서는 순간, 세계는 구원받을 수 있다.” 연합은 화학적 합이 아니라 윤리적 결단이며, 그 결단의 배경에는 ‘나’보다 ‘우리’라는 상상력이 자리한다.

희생으로 완성된 영웅의 의미

이 영화의 전율은 스펙터클에만 있지 않다. 진짜 감동은 각 영웅이 자기 이익보다 공동체를 선택하는 순간에 있다. 그중에서도 토니 스타크의 궤적은 어벤져스가 지향하는 영웅론을 압축한다.

토니는 처음엔 자만한 천재에 가깝다. 문제는 지능과 자본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확신이 강하다. 그러나 전투가 격화될수록 그는 깨닫는다. “리더는, 마지막에 남는 사람이다.” 뉴욕 상공에서 핵폭탄이 발사되자 그는 주저하지 않는다. 포털 깊숙이 폭탄을 실어 나르고, 귀환조차 보장되지 않은 길을 택한다. 그 스냅의 선행이 훗날 엔드게임의 ‘마지막 선택’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2012년의 아이언맨은 이미 ‘희생의 자격’을 증명하고 있었다.

반면 캡틴 아메리카는 리더십의 실천으로 존재 이유를 입증한다. 도시 한복판에서 그는 전장을 도해(圖解)하고 각자의 능력을 최적으로 배치한다. 아이언맨에겐 상공 방어, 헐크에는 대형 적 제압, 호크아이·블랙 위도우에겐 시민 보호를 지시한다. “어벤져스— 어셈블!” 한마디는 외침 이상의 의미다. 무력의 총합이 아니라, 책임의 분담을 선언하는 언어다.

헐크 역시 ‘자기희생’의 결을 달리 보여준다. 분노를 두려움으로 살아온 그는 “항상 화난 게 비결”이라 고백하며 스스로를 전장에 투입한다. 파괴의 힘을 통제된 보호로 전환하는 순간, 괴물은 공동체의 방패가 된다. 이처럼 희생은 목숨의 포기만이 아니라, 자신의 약점을 직시하고 공동선을 위해 활용하는 윤리적 전환을 포함한다.

결국 뉴욕 전투의 승리는 ‘강함’의 승리가 아니라 의지의 승리다.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누가 싸우지?”라는 질문 앞에서 그들은 한 사람씩, 단 한 번 더 앞으로 나아간다. 〈어벤져스〉가 남긴 정의란 이것이다. 희생은 끝이 아니라, 서로를 믿게 되는 시작이라는 것.

 믿음으로 이어지는 연대의 힘

〈어벤져스〉의 진정한 위대함은 거대한 전쟁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뢰를 축으로 이야기를 세운 데 있다. 아이언맨의 오만, 캡틴의 완고함, 토르의 자존심, 헐크의 불안— 결점의 나열 같던 조합은, 결점 위에 쌓인 신뢰 덕분에 팀이 된다.

이 신뢰는 ‘완벽한 이해’의 결과가 아니다. 그들은 끝내 서로를 전부 알지 못한다.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기로 선택”한다. 블랙 위도우는 배너에게 손을 내밀고, 호크아이는 로키에게 조종당한 과거의 오점을 팀을 위해 만회한다. 선택의 반복이 신뢰를 낳고, 신뢰의 축적이 연대를 만든다.

마지막에 토니와 스티브가 교차하는 짧은 미소는 상징적이다. “우리는 다르다. 그렇지만 함께할 수 있다.” 이 작고 단단한 확인이 이후 MCU의 거대한 연쇄— 울트론, 시빌 워, 인피니티 워, 엔드게임— 를 지탱하는 초석이 된다. 2012년의 뉴욕은 그래서 하나의 서사적 기원이다. 서로를 처음 믿었던 세계.

연합·희생·믿음의 서사

〈어벤져스〉는 액션 블록버스터의 형식을 빌려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싸우는 인간의 가능성을 변론한다. 토니의 희생, 캡틴의 리더십, 헐크의 자기극복, 블랙 위도우·호크아이의 보이지 않는 헌신, 그리고 토르의 책임—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팀”이라는 개념을 윤리로 끌어올린다.

이 팀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불완전한 이들이 서로를 향해 한 걸음 더 내밀 때, 완벽에 가까운 팀워크가 발생한다. 영화는 말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완벽한 팀은 존재한다.” 뉴욕 전투 이후, 인류는 히어로를 믿게 되었고, 히어로들은 인간을 믿게 되었다. 그것이 〈어벤져스〉의 유산이다.

마지막으로, 토니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지은 미소를 떠올린다. 세상을 구한 건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믿음— 그리고 믿음을 가능케 한 연합과 희생이었다. 첫 페이지는 이렇게 끝났고, 동시에 수많은 후속 페이지가 열렸다. 끝은 곧 시작이었다.